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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성인과 한국천주교순교사

조선의 교우촌인 두메산골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접하게 된 마카오에서의 생활

이전에 서양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천주교에 대한 내용과  선교사들을 통한 간접 지식이 전부였던 시골 소년들. 정식 서양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또한 호기심은 있지만  모든 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선교사들 또한 어떻게 하면 이  시골 소년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한 예로 선교사들의 서신에 의하면 특히 서양 음악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소년들을 가르치기 위해 서양 악기를 본국에서 보내 주도록 요청  하는 내용이 있다

특히 김대건은 목소리가 쉰 소리가 나고 또한 음악적  감각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는 걸로 보아 새로운 교육 방법에 적응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또한 김대건은 수시로  두통에 시달린 걸로 보아 새로운 생활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성 증상이  있었던 걸로 생각된다. 또한 김대건은 최양업과는 달리 선교사들과의  산책 등에 자주 어울리지 못하고 잔병치레를 하고 있는 것이 서신에  자주 보인다

1839 8 11일 자 선교사들의 서신에서최양업은 계속해서 유리한 상태에 있고 하느님께서 그의 건강을 허락해 주신다면  조선 포교지를 위해 유익한 몸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불쌍한  김대건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위병과 두통과  요통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리털만 보더라도 그의 큰 두통을  짐작하게 합니다. 지금 그의 머리털은 회색이고 희고 얼굴빛은 노랗고  거의 모든 색깔입니다.   

저는 일찍이 이렇게 추한 머리털을 보지   못했습니다또한 그는 판단이 늘 좋은 것은 아닙니다그래서   데플레슈(Des-fleches) 신부는 난처해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아와 토마스 사이에 균형  이 도무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주교님의 의향을 정말  알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잘 보살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표부를 지나는 선교사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함을 잘  아실 것입니다

또 대표들은 그들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선교사만이  아니고 젊은이들 자신들도 이 문제를 겪으며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보내질 장소가 마침내 결정되는 주교의 편지를 받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제게 여러 번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학교가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진전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그들  나름의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