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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자료

에페소 공의회/칼케돈 공의회

2016.12.12 16:39

윤태일 조회 수:222

기타 공의회의 요약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21 차례의 공의회를 보편 공의회로 인정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위의 두번 공으회 이후 의 각 공의회를 간단            히 요약하고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집중하고자 한다. 회수는 앞에 이어 하기로 한다.


3.    에페소 공의회(431 622~717)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인 네스토리오의 주장 (성모마리아의 하느님 모친 거부) 에 따른 교리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동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431 6 22(성령 갈림 대축일)에 에페소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네스토리오는 참석하지 않았고 네스토리오를 지지하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요한의 일행과 교황 전권 사절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가운데 첫 회기(622)에 치칠로의 주도로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와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실제적 일치에 대한 신앙 선언문을 낭독하고 19명의 주교들이 교령을 인준, 서명하고 아울러 네스토리오 와 그의 주장에 대한 단죄문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5일 후에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를 포함한 44명의 주교단이 도착하여 치칠로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에페소 공의회 결정을 반대하는 대립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궂은 날씨로 2주일 늦게 도착한 두 명의 주교와 한 명의 신부로 구성된 교황 사절단은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추인하였다.

공의회는 5차 회기에서 네스토리오와 그 일파를 단죄하였다.

교황 식스토 3세는 731일 에페소 결정을 추인하였다.

그러나 그 후 황제는 치칠로파와 네스토리오파의 상호 비난으로 야기된 소동을 끝내기 위해 치칠로와 네스토리오를 연금하였다. 이제 교황 식스토3세와 황제는 분열된 교회의 평화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연금에서 풀려난 치칠로와 안티오키아 대주교 요안네스를 통해 화해를 모색였다. 오랜 교섭 끝에 433 423일치 신조또는 에페소 신조가 작성되었다.


2.     칼케돈 공의회(45188~111)


예수그리스도의 신성만을 주장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근교 수도원장 에우티케스의 단성론(그리스도의 유일 신성 강조)에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451 517일에 동로마 황제는 칼케돈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제2회기에서 교황 레오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가 낭독되고 주교들은 이것이 교부 신앙, 사도신앙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믿는다. 레오를 통해 베드로가 말씀하셨다고 했고 교황은 편지에서 독생성자 주 예수 그리스도 두 본성(신성과 인성)의 교유성을 보존하시면서 한 위격과 한 실존으로 합치되어 있습니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명제가 분명히 언급된 칼케돈 신조가 제5 공의회에서 통과되어 제6기에 황제의 임석 아래 성대하게 선포되었다. 이로써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거나 (네스토리오 이단 배격)혼합되지 않으면서 (에우티케스의 단성론 이단 배격) 한 위격 안에 일치 되어 있다.’는 오늘날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공의회는 30개항의 법규를 발포하였다.

황제는 452 2 4개의 칙령을 통해서 교령을 선포하였고 교황은 453년 제28조항을 제외하고 교령을 비준하였다.

그러나 칼케돈 공의회 결정을 반대한 일부 동방교회들이 갈라져 나가 단성론 교회(현재 고대 동방교회)를 성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