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명동 대성당 사이트 바로가기

세종로 성당 다음 카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자료

공의회의 역사와 의미-1

2016.11.21 12:11

윤태일 조회 수:148

라틴어로 공의회를 뜻하는 <콘칠리움><불러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공의회는 교리와 규율과 같은 교회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몇 곳의 교회들의 모임 또는 몇 명의 주교들의 모임인 교회회의라는 뜻을 지닌다.

한편 동방교회에서는 콘칠리움 대신 <시노도스>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가톨릭의 의미는 보편적이라는 의미로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인 즉 모든 사람의 교회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톨릭 즉 보편교회의 공의회는 <콘칠리움 에쿠메니칼레>로 명명된다.

공의회의 역사는 넓은 의미에서 예루살렘 모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의 모임이다. 이 사도회의는 나중에 고대 그리스도교 주교 모임의 모델로 여겨진다.

즉 서기 49년경 에 유다 민족주의에 굴복한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안티오키아에 도착하여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도 할례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자 안티오키아를 선교의 거점으로 활동하던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 국가의 세속적 목적과 연결될 위험을 깨닫고 할례의 의무화에 대한 요구를 단호하게 배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쟁점의 중요성으로 보아 안티오키아의 공동체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를 예루살렘에 파견하였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랜 논란 끝에 사도 단의 으뜸인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에게 율법 준수를 강요할 수 없다는 말로 토론을 종결 짓자 참석자들이 잠잠해졌다.

이후 지역교회의 주교들은 사도들의 본보기를 반영하여 신자들의 양심을 혼란시키고 명백한 정의가 필요한 교리와 규율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회의를 소집하였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21 차례의 공의회를 보편 공의회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정은 모든 공의회에 공통된 교황의 입법 행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교회 학문과 그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각 공의회에 대한 승인 과정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아 다소 이론이 있다. 위의 21차 공의회는 다음의 특징이 있다.

첫째 고대 황제 개입 제국 공의회이다.

둘째 중세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의 공의회들이다.

셋째 근대-현대 가톨릭 교회 공의회들이다.